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복궁 영추문 (문단 편집) == 여담 == * [[청일전쟁]]이 한창이던 1894년([[고종(대한제국)|고종]] 31년) 7월에 [[일본군]]이 [[경복궁]]을 점령할 때 영추문을 부수고 들어왔다. 물론 다른 문들에서도 전투가 벌어졌지만, 일본군은 특히 침전과 가까운 영추문에 공격을 집중시켰다. 자세한 것은 [[일본군의 경복궁 점령]] 문서 참조. * 1896년([[건양]] 원년) 2월에 [[고종(대한제국)|고종]]이 [[아관파천|러시아 공사관으로 갈 때]] 영추문을 통해 [[경복궁]]을 빠져나갔다.[* [[경복궁 신무문|신무문]]이었다고도 한다.] *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youtube(GDc2C8LXd_Q)]}}} || || {{{#gold '''영추문 개방을 다룬 〈[[JTBC news|{{{#gold JTBC 뉴스}}}]]〉'''}}} || [[복원]] 후 정부에서는 한동안 닫아놓았다가 2018년 12월 6일에 일반에 개방했다. 그래서 영추문으로 관람객의 출입이 가능하다. [[경복궁]]에서 [[서촌]]으로, 또는 그 반대로 가려면 영추문을 이용하면 훨씬 가깝게 갈 수 있으니 참조하자. * 2019년에 서울역사편찬원에서 일본에 있던 《[[경복궁]] 영건일기》를 분석한 결과 영추문 [[현판]]이 검은 바탕, 흰색 글씨가 아닌 반대였다는 것을 밝혀냈다.[[https://n.news.naver.com/article/005/0001207653|#]] *중건 당시의 현판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.[[https://www.museum.go.kr/site/main/relic/search/view?relicId=35817915|#]] *[[파일:영추문 현판(국립중앙박물관 소장).jpg|width=60%]] * 석축이 무너진 영추문을 해체할 당시 문루로 통하는 작은 벽돌문이 [[경복궁 자경전]]의 동쪽 담장으로 이전되어 보존되어 왔음이 밝혀졌다.[[https://kko.to/pIPueYiU7k|로드뷰]] [[문화재청]]은 영추문 소문(小門)이 행방불명됐고 영추문 부재는 남아 있지 않다고 주장해 왔다.[[https://www.chosun.com/national/weekend/2023/10/21/LNC3AYMNEFHU3EIFPI5A2REYM4/|#]] [각주][include(틀:문서 가져옴, title=경복궁 건춘문, version=3, paragraph=4)] [[분류:경복궁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